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저축과 기본값의 힘
저축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달부터"를 되풀이하는 일은 흔합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지금과 나중을 저울질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기본값 하나를 바꾸자 퇴직연금 가입률이 37%에서 86%로 달라진 연구와, 그 원리를 쓰는 한국 제도를 살펴봅니다.
“다음 달부터”가 되풀이되는 이유
앞 챕터의 착각은 너무 자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착각은 반대입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지금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 퇴직연금 가입자의 3분의 2는 자기 저축이 너무 적다고 답했습니다.[1] 저축이 모자라다는 사람 가운데 35%는 몇 달 안에 저축을 늘리겠다고 했습니다.[1]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의 86%는 넉 달 뒤에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1] 알고, 결심하고, 말까지 한 사람들조차 대부분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밤에 알람을 6시에 맞출 때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당연히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다시 알림’ 단추에 손이 갑니다. 밤의 나는 먼 계획을 세우는 나이고, 아침의 나는 지금의 편안함을 고르는 나입니다. 다만 저축은 미룬 만큼 복리가 일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복리 코스 4장에서 그 크기를 보았습니다.
경제학은 이것을 지금이나 가까운 때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먼 미래의 것보다 특히 무겁게 보는 성향입니다.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지금과 가까운 때의 즐거움을 특히 무겁게 봅니다.[1] 그래서 멀리 있을 때는 큰 보상을 고르던 사람도, 작은 보상이 코앞에 오면 마음을 바꿉니다.[1] 오늘 세운 계획을 내일의 내가 따르지 않는 까닭입니다.
미루기가 쌓이면 지금 상태에 그대로 머무는 바꾸는 편이 낫더라도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려는 성향입니다.이 됩니다.[1] 미국 대학 교직원 퇴직연금에서는 은퇴할 때까지 투자 비중을 바꾼 횟수의 중앙값이 0이었습니다.[1] 절반 넘는 사람이 처음 정한 그대로 은퇴한 것입니다.
위 조사의 사람들은 결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결심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1] 현재 편향은 실행하는 날마다 다시 찾아옵니다. 그날의 의지에 기대면 또 미뤄집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의지를 키우는 대신 구조를 바꾸는 쪽을 찾았습니다.[1] 미루는 마음이 오히려 저축 쪽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본값을 바꾸자 가입률이 달라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저절로 적용되는 선택지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저절로 적용되는 선택지입니다.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퇴직연금은 원래 직원이 스스로 신청해야 가입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1] 그런데 한 대기업이 1998년 4월부터 신입 직원의 기본값을 바꿨습니다.[2] ’빼 달라고 하지 않으면 가입’으로 바꾼 것입니다.
자동으로 가입된 직원은 월급의 3%를 위험이 낮은 머니마켓펀드에 넣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2] 언제든 납입액과 펀드를 바꾸거나 빠질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얹어 주는 돈과 고를 수 있는 투자 상품은 그대로였습니다.[2]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입사 3~15개월 직원끼리 견주면, 스스로 신청해야 했던 직원은 37%만 가입했습니다. 자동으로 가입된 직원은 86%가 가입해 있었습니다.[2] 돈은 한 푼도 더 주지 않았는데, 서류 한 장의 방향이 가입률을 두 배 넘게 바꿨습니다.
월급날 정한 날짜에 정한 금액을 한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저절로 옮기도록 걸어 두는 이체입니다.월급날 자동이체의 순서 챕터에서 보기도 같은 원리입니다. 첫 월급 코스 3장에서 저축이 월급날 가장 먼저 빠져나가게 걸어 두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축이 되는 기본값을 내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기본값에는 그늘도 있습니다. 자동으로 가입된 직원 상당수가 회사가 정한 낮은 납입액과 펀드를 그대로 두었습니다.[2] 연구진은 관성, 그리고 기본값을 회사의 조언으로 여기는 마음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2] 기본값이 낮으면 그만큼 돈이 덜 쌓일 수 있습니다.[3] 다만 그 연구의 회사들에서는 가입이 늘어난 효과와 대체로 상쇄되어, 평균 적립액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3]
기본값은 회사나 금융회사가 모두에게 한꺼번에 적용하는 출발점입니다. 내 나이, 소득, 다른 저축을 보고 정한 값이 아닙니다. 위 연구의 기본 조합도 직원들이 스스로 고를 때는 드물던 조합이었습니다.[2] 기본값은 시작을 만들어 줄 뿐이고, 나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일은 내 몫입니다.
월급이 오를 때만 저축을 늘리는 설계
기본값이 시작을 만든다면, 저축을 계속 키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Thaler와 Benartzi는 앞의 착각들을 거꾸로 이용하는 Save More Tomorrow(내일 더 저축하기)를 만들었습니다.[1] 네 가지 장치가 하나씩 착각을 겨냥합니다.[1]
- 저축을 늘리는 일은 훨씬 전에 약속합니다. 먼 미래의 저축은 덜 아프게 느껴집니다.
- 월급이 오른 뒤에 늘립니다. 손에 쥐는 돈이 줄면 손실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 월급이 오를 때마다 저절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관성이 저축을 지킵니다.
- 언제든 빠질 수 있습니다. 빠질 수 있으면 들어오기도 쉽습니다.
두 번째 장치가 왜 통하는지 가상의 예로 보겠습니다. 월급 300만 원에서 3.5%를 저축하던 사람이 저축률을 6.5%로 올린다고 해 봅시다. 월급이 3.5% 오르는 날 올리면, 저축이 두 배 가까이 늘어도 손에 쥐는 돈은 줄지 않습니다. 월급이 그대로인 달에 올리면 손에 쥐는 돈이 9만 원 줄어듭니다. 똑같이 늘려도 앞은 오른 월급을 조금 덜 받는 것이고, 뒤는 손실입니다.
계산 과정 보기
가상의 예시이고 세금은 무시합니다. 월급 300만 원에서 3.5%를 저축하면 저축 10만 5,000원, 손에 쥐는 돈 289만 5,000원입니다.
- 월급이 3.5% 올라 310만 5,000원이 된 날 저축률을 6.5%로 올리면: 저축 310만 5,000 × 6.5% = 20만 1,825원, 손에 쥐는 돈 310만 5,000 − 20만 1,825 = 290만 3,175원으로 8,175원 늘어납니다.
- 월급이 그대로인 달에 6.5%로 올리면: 손에 쥐는 돈 300만 × (1 − 6.5%) = 280만 5,000원으로 9만 원 줄어듭니다.
첫 시행은 1998년 미국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이뤄졌습니다.[1] 제안받은 직원의 78%가 가입했습니다.[1] 가입자의 80%는 네 번째 월급 인상 때까지 빠지지 않았습니다.[1]
가입자의 평균 저축률은 40개월 동안 3.5%에서 13.6%로 올랐습니다.[1] 상담사의 권고를 곧바로 받아들인 직원들은 처음에 크게 올랐지만 그 뒤로 멈췄습니다.[1] 다만 이것은 무작위로 나눈 실험이 아니라 직원이 스스로 고른 결과입니다.[1]
한국의 기본값: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
한국의 퇴직연금에도 기본값이 법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미리 정해 둔 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입니다.입니다. 가입자가 운용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미리 정해 둔 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입니다.[4] 아래는 2026년 10월 현행 법 기준입니다.
- 미리 정해 둘 운용방법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회사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 정합니다.[5]
- 회사가 넣을 돈이 미리 정해진 퇴직연금입니다. 굴리는 방법은 내가 고르고, 그 결과를 받습니다.DB와 DC, 운용 위험은 누가 지나 챕터에서 보기에 가입하고도 운용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퇴직연금을 맡은 금융회사가 미리 정한 방법으로 운용된다고 알립니다.[6] 직접 고른 운용방법의 기간이 끝나고 4주가 지나도록 다시 고르지 않을 때도 똑같이 알립니다.[6]
- 알림을 받고 2주 안에도 고르지 않으면 미리 정한 방법으로 운용됩니다. 이때 법은 가입자가 스스로 고른 것으로 봅니다.[6]
- 가입자는 언제든 직접 운용방법을 고를 수 있습니다.[6]
미국 연구에서 많은 사람이 기본값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2] 사전지정운용방법도 많은 사람의 실제 운용방법이 되기 쉽습니다. 법이 ’스스로 고른 것으로 본다’고 정한 만큼, 내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한 번은 직접 확인할 일입니다.[6] DB와 DC에서 운용 위험을 누가 지는지는 퇴직연금 코스 2장에서 다룹니다.
세 챕터는 하나로 이어집니다. 1장에서는 잃는 것을 얻는 것보다 두 배쯤 크게 느끼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그 마음이 오른 주식은 팔고 내린 주식은 쥐게 하고, 잦은 매매가 잔액을 깎는 것을 보았습니다. 3장에서는 미루는 마음과 관성을 보고, 그것을 저축 쪽으로 돌리는 기본값을 보았습니다. 세 착각은 그 순간의 의지로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응도 모두 구조였습니다. 결과를 다시 쓰고, 덜 들여다보고, 아무것도 안 해도 저축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용어 정리
- 현재 편향
- 지금이나 가까운 때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먼 미래의 것보다 특히 무겁게 보는 성향입니다.
- 현상 유지 편향
- 바꾸는 편이 낫더라도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려는 성향입니다.
- 기본값
-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저절로 적용되는 선택지입니다.
- 사전지정운용제도
-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미리 정해 둔 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이해도 점검
정답 0 / 3Q1지난주에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1만 원씩 저축하겠다'고 계획했는데, 막상 월요일이 되자 '이번 주는 바쁘니 다음 주부터'로 미뤘습니다. 이 챕터의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Q2Madrian과 Shea가 분석한 회사에서 입사 3~15개월 직원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37%에서 86%로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Q3자동으로 가입된 직원 상당수는 회사가 정한 낮은 납입률과 펀드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챕터의 요약
- 가까운 것을 특히 무겁게 보는 현재 편향 때문에 저축은 계획만 되고 미뤄집니다.
- '빼 달라고 하지 않으면 가입'으로 기본값을 바꾸자 가입률이 두 배 넘게 올랐습니다.
- 기본값은 시작을 만들어 줄 뿐이니, 내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한 번은 직접 확인합니다.
출처와 신뢰도
- AThaler·Benartzi, "Save More Tomorrow: Using Behavioral Economics to Increase Employee Saving"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12권 S1호, 2004, S164~S187쪽) ·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Field Experiments Website의 출판본 사본)동료 심사 학술지 논문입니다. 401(k) 가입자 3분의 2가 자기 저축률이 너무 낮다고 보고, 저축이 모자라다는 사람의 35%가 몇 달 안에 늘리겠다고 했지만 그중 86%가 넉 달 뒤에도 바꾸지 않았다는 조사(Choi 외 인용), 가까운 보상을 특히 무겁게 보는 현재 편향, 미루기가 관성(현상 유지 편향)을 낳는다는 설명, 은퇴할 때까지 자산 배분 변경 횟수의 중앙값이 0이었다는 TIAA-CREF 사례(Samuelson·Zeckhauser 인용), Save More Tomorrow의 네 가지 설계, 첫 시행(1998년 중견 제조업체)의 결과(제안받은 207명 중 162명 78% 가입, 80%가 네 번째 인상까지 유지, 표 2의 저축률 3.5→6.5→9.4→11.6→13.6%와 조언 수용 집단 4.4→9.1→8.9→8.7→8.8%), 무작위 배정이 아니었다는 한계를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Madrian·Shea, "The Power of Suggestion: Inertia in 401(k) Participation and Savings Behavior"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16권 4호, 2001, 1149~1187쪽) · NBER Working Paper 7682 (2000)출판본의 워킹페이퍼 판입니다. 1998년 4월 1일부터 신입 직원을 납입률 3%·머니마켓펀드로 자동 가입시키고 다른 조건은 바꾸지 않았다는 설명, 입사 3~15개월 시점의 가입률(자동 가입 직전 입사 37.4%, 자동 가입 뒤 입사 85.9%, 표 5), 기본값 행동이 관성과 기본값을 회사의 조언으로 여기는 데서 온다는 해석을 가져왔습니다. QJE 출판본 원문은 공개 주소에서 열 수 없어 수치를 직접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출판본 초록은 같은 두 결론을 담고 있고, 출판본을 인용한 Choi 외(2004)의 '신입 직원 가입률 48%p 상승'은 워킹페이퍼의 85.9% − 37.4% = 48.5%p와 맞습니다.본문으로
- AChoi·Laibson·Madrian·Metrick, "For Better or for Worse: Default Effects and 401(k) Savings Behavior" (Perspectives on the Economics of Aging, 2004) · NBE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연구서의 한 장)전미경제연구소가 펴낸 연구서의 한 장입니다. 낮은 기본 납입률과 보수적인 기본 펀드가 적립을 깎지만 연구한 회사들에서는 가입률 상승 효과와 대체로 상쇄되어 자동 가입이 장기 평균 적립액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결론(83쪽)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조 (정의) ·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제처)현행 조문(법률 제21475호, 2026. 3. 17. 일부개정, 국가법령정보센터 2026. 9. 18. 시행본)입니다. 사전지정운용제도를 가입자가 적립금의 운용방법을 스스로 선정하지 않은 경우 사전에 지정한 운용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로 정의한 제15호를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1조의2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설정) ·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제처)현행 조문(법률 제21475호, 국가법령정보센터 2026. 9. 18. 시행본)입니다. 퇴직연금사업자가 사전지정운용방법을 만들어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제1항,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 확정기여형퇴직연금규약에 반영한다는 제5항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1조의3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운영) ·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제처)현행 조문(법률 제21475호, 국가법령정보센터 2026. 9. 18. 시행본)입니다. 확정기여형 가입 때나 스스로 고른 운용방법의 기간 만료일부터 4주가 지났을 때 운용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통지하고(제3항), 통지 뒤 2주 안에도 고르지 않으면 사전지정운용방법으로 운용하며 스스로 선정한 것으로 본다는 제4항, 언제든 스스로 운용방법을 고를 수 있다는 제5항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