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나
1997년 겨울, 1달러를 사는 데 드는 원화가 두 달이 안 돼 두 배가 됐고 한국은 IMF에 돈을 빌렸습니다. 원화는 한국은행이 찍을 수 있지만 달러는 찍을 수 없습니다. 은행들이 짧게 빌린 달러 빚이 한꺼번에 돌아온 과정을 따라갑니다.
두 달 만에 두 배가 된 환율
1997년 11월 3일 원/달러 바로 앞 영업일에 은행끼리 거래한 원/달러 환율을 거래량에 따라 평균 낸 기준 환율입니다. 서울외국환중개가 매일 아침 알립니다.환율은 무엇이 움직이나 챕터에서 보기은 964.6원이었습니다.[1] 12월 24일에는 1,964.8원이 됐습니다.[1] 1달러를 사는 데 드는 원화가 두 달이 안 되는 사이 두 배를 넘었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 가치가 내린다는 것은 환율 코스 1장에서 봤습니다.
그 사이 한국 정부는 외화가 모자란 회원국에 돈을 빌려주고 경제 정책을 점검하는 국제기구입니다.에 돈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2] 한국은행은 이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외화가 급히 필요할 때나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때 언제든 쓸 수 있게 갖고 있는 외화 자산입니다. 부족을 꼽습니다.[3] 원화는 한국은행이 찍을 수 있지만, 달러는 찍을 수 없습니다. 이 챕터는 그 달러가 왜 모자랐는지 따라갑니다.
계산 과정 보기
1,964.8 ÷ 964.6 ≈ 2.04배입니다.
1년짜리 빚으로 오래 걸리는 대출을 내주면
1990년대 한국의 은행들은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 왔습니다.[5] 그 빚의 큰 몫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짧은 빚, 곧 만기가 1년 이하인 외국 빚입니다.였습니다.[5] 은행들은 이렇게 들여온 돈을 기업에 오래 빌려주었습니다.[4]
1년 뒤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려, 몇 년이 지나야 본전을 찾는 가게를 차렸다고 해 봅시다. 빌려준 사람이 해마다 “1년 더 쓰세요” 하고 연장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서 짧은 빚은 은행들이 외국에서 빌린 달러이고, 가게는 기업에 내준 긴 대출입니다. 만기가 온 빚을 새 빚으로 바꿔 연장하는 일을 만기가 온 빚을 새로 빌린 돈으로 갚아 사실상 빚을 연장하는 일입니다. 롤오버(rollover)라고도 합니다.이라고 합니다. 빌려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연장을 거절하면, 가게가 멀쩡해도 당장 갚을 돈이 없습니다. 다만 나라에는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있습니다. 바로 외환보유액입니다.
한국은행 조사부의 1999년 논문은 당시의 판단을 이렇게 정리합니다.[4] 은행끼리의 짧은 빚은 별일이 없으면 저절로 연장되니, 길게 빌려줘도 위험이 적다고 봤다는 것입니다.[4] IMF 독립평가실(IEO)은 이 빚이 외국 은행이 연장을 거절하면 곧바로 흔들리는 구조였다고 평가했습니다.[2]
연장이 멈추자 달러가 빠져나갔다
여름에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번지고 한국 은행들의 부실이 드러나자 외국 은행들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5] 점점 더 많은 외국 은행이 한국 금융회사에 빌려준 짧은 빚을 연장하지 않았습니다.[5] 한국은행은 물건과 서비스를 외국과 사고판 결과를 나타내는 수지입니다.환율은 무엇이 움직이나 챕터에서 보기 적자와 늘어난 단기외채로 기초가 약한 상태에서 외화가 빠르게 빠져나갔다고 설명합니다.[8]
만기가 온 단기외채 가운데 연장된 몫은 몇 주 사이에 이렇게 줄었습니다.[4]
| 1997년 | 만기가 온 단기외채 가운데 연장된 비율[4] |
|---|---|
| 10월 상반기 | 85.5% |
| 10월 하반기 | 83.7% |
| 11월 상반기 | 68.4% |
| 11월 하반기 | 51.2% |
| 12월 상반기 | 27.5% |
12월 상반기에는 만기가 온 빚 열 가운데 일곱 넘게가 연장되지 않은 셈입니다. 연장되지 않은 빚은 달러로 갚아야 합니다. 은행들이 구할 수 없는 달러는 결국 나라의 외환보유액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있었지만 쓸 수 없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두 갈래로 막으려 했습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팔아 원화 값을 받쳤고, 빚을 갚기 어려워진 국내 은행 해외 지점에 달러를 대 주었습니다.[5] IEO는 11월의 환율 방어가 외환보유액을 크게 축냈다고 봅니다.[2]
해외 지점에 대 준 달러는 공식 외환보유액 숫자에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5] 하지만 빚 갚는 데 쓰라고 맡긴 돈이라 바로 꺼내 쓰기 어려웠습니다.[5] 그래서 숫자와 실제로 쓸 수 있는 달러, 곧 외환보유액 가운데 국내 은행 해외 지점에 맡긴 돈처럼 묶인 몫을 빼고 바로 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이에 큰 틈이 생겼습니다.
| 무엇 | 언제 | 규모 |
|---|---|---|
| 1년 안에 갚을 외국 빚(IEO 추정) | 1997년 9월 말 | 약 860억 달러[2] |
| 공식 외환보유액 | 1997년 11월 말 | 약 244억 달러[1] |
| 그 가운데 바로 쓸 수 있던 달러 | 1997년 11월 말 | 73억 달러[3] |
IEO도 가용 외환보유액을 약 70억 달러로 보고, 곧 만기가 오는 빚에 비해 아주 적었다고 평가했습니다.[5]
“외환보유액 숫자가 크면 위기를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겉만 본 것입니다. 1997년의 공식 숫자에는 이미 빚 갚는 데 묶인 돈이 섞여 있었습니다.[5] 위기 때 중요한 것은 장부의 숫자가 아니라,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달러가 곧 갚을 빚에 견줘 얼마나 되느냐입니다.
IMF 구제금융과 그 뒤
| 날짜 | 일어난 일 |
|---|---|
| 1997년 11월 19일 | 하루 환율 변동 폭을 위아래 2.25%에서 10%로 넓힘[2] |
| 11월 21일 | 정부가 IMF에 돈을 빌리겠다고 발표[2] |
| 12월 3일 | IMF와 협상을 마치고 3년짜리 대기성 차관을 공식 요청[2] |
| 12월 4일 | IMF 이사회가 지원을 승인[2] |
| 12월 16일 | 하루 변동 폭 제한을 없애 환율을 시장에 맡김[2][8] |
| 12월 24일 | IMF 지원을 앞당기고 국제 은행들이 빚 연장에 나서기로 함[5] |
| 1998년 1월 28일 | 짧은 빚을 1~3년짜리 새 대출로 바꾸기로 국제 은행들과 합의[2] |
| 2001년 8월 | IMF에 빌린 돈을 모두 앞당겨 갚음[7] |
IMF가 3년에 걸쳐 빌려주기로 한 돈은 약 210억 달러였습니다.[2]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여러 나라의 돈까지 합친 규모는 집계에 따라 다릅니다. IEO는 550억 달러로, 국가기록원은 580억 달러로 적었습니다.[2][7] 돈에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부실한 금융회사를 정리하고, 경제를 더 열고, 기업 경영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6]
IEO는 12월 24일을 위기의 전환점으로 봅니다.[5] 연장을 멈췄던 국제 은행들이 대체로 다시 빚을 연장해 주었기 때문입니다.[5] 위기를 부른 것이 빚의 연장 중단이었으니, 풀린 것도 연장이 다시 시작되면서였습니다.
다음 챕터에서는 10년 뒤 미국에서 시작된 2008년 위기를 봅니다. 이번 출발점은 외국 빚이 아니라 집 대출이었습니다.
용어 정리
- 단기외채
- 만기가 1년 이하인 외국 빚입니다.
- 차환
- 만기가 온 빚을 새로 빌린 돈으로 갚아 사실상 빚을 연장하는 일입니다. 롤오버(rollover)라고도 합니다.
- 외환보유액
-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외화가 급히 필요할 때나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때 언제든 쓸 수 있게 갖고 있는 외화 자산입니다.
- 가용 외환보유액
- 외환보유액 가운데 국내 은행 해외 지점에 맡긴 돈처럼 묶인 몫을 빼고 바로 쓸 수 있는 부분입니다.
- 국제통화기금(IMF)
- 외화가 모자란 회원국에 돈을 빌려주고 경제 정책을 점검하는 국제기구입니다.
이해도 점검
정답 0 / 4Q11997년 말 한국에 달러가 모자라게 된 과정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Q21997년 11월 말 공식 외환보유액은 200억 달러를 넘었는데, 바로 쓸 수 있는 몫은 훨씬 적었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Q3한국은행 조사부의 1999년 논문에 따르면, 당시 은행들이 짧게 빌려 길게 빌려줘도 괜찮다고 본 까닭은 무엇입니까?
Q4IMF 독립평가실(IEO)이 1997년 12월 24일을 위기의 전환점으로 본 까닭과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이 챕터의 요약
- 1997년 한국 은행들은 1년 안에 갚을 달러 빚으로 기업에 오래 걸리는 대출을 내줬습니다.
- 외국 은행들이 연장을 멈추자 달러가 빠져나갔고, 바로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공식 숫자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 한국은 IMF 등에서 돈을 빌리고, 국제 은행들이 빚 연장에 나서면서 고비를 넘겼습니다.
출처와 신뢰도
- A경제통계시스템(ECOS) · 주요국 통화의 대원화환율, 외환보유액 · 한국은행중앙은행의 공식 통계입니다. 2026년 10월 29일에 조회한 통계표 3.1.1.1(일별 원/미국달러 매매기준율)의 1997년 11월 3일 964.6원, 12월 24일 1,964.8원과, 통계표 732Y001(외환보유액 합계, 월말)의 1997년 11월 말 244억 430만 달러를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The IMF and Recent Capital Account Crises: Indonesia, Korea, Brazil — Annex 2 Korea (2003) · IMF 독립평가실(IEO)IMF 안의 독립 평가 기구가 낸 평가 보고서의 한국 부록입니다. 해외 지점 때문에 한국 은행들이 외화 자산과 부채 사이의 만기 불일치를 안고 있었고 빚 상당 부분이 짧아 외국 은행이 연장을 거절하면 취약했다는 평가(인쇄 95쪽), 11월의 환율 방어 개입이 외환보유액을 크게 축냈다는 평가(96쪽), 1997년 9월 말 단기외채(은행·비은행) 추정치 약 860억 달러(112쪽), 연표(118~119쪽)의 11월 19일 하루 변동 폭 확대(±2.25%→±10%), 11월 21일 IMF 지원 요청 발표, 12월 3일 SDR 155억(약 210억 달러) 3년 대기성 차관 공식 요청과 550억 달러 지원 패키지, 12월 4일 IMF 이사회 승인, 12월 16일 하루 변동 폭 제한 폐지, 12월 24일 지원 가속과 미국 은행들의 연장 의사, 1998년 1월 28일 단기 빚을 1~3년 만기 새 대출로 바꾸는 합의를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외환보유액 운용의 과거·현재·미래 · 한국은행중앙은행이 낸 해설 기사(2014년)입니다. 외환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외환보유액 부족이었다는 평가, 외환보유액의 뜻,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11월 말 가용 외환보유액이 73억 달러에 불과했다는 수치를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한국의 외환위기와 외채 (경제분석 제5권 제1호, 1999, 박대근) · 한국은행 조사부중앙은행 조사부 학술지의 논문(첨부 PDF)입니다. 금융기관 사이의 단기 차입금은 별문제가 없는 한 자동으로 연장되어 장기 차입금처럼 운용되므로 단기로 들여온 외자를 기업 대출에 장기로 써도 유동성 위험이 적다고 판단되었다는 설명(인쇄 16쪽)과, 단기외채 차환율이 1997년 10월 상반기 85.5%, 하반기 83.7%, 11월 상반기 68.4%, 하반기 51.2%, IMF 구제금융이 합의된 12월 상반기 27.5%로 떨어져 가용 외환보유액이 거의 바닥났다는 분석(인쇄 21~22쪽)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The IMF and Recent Capital Account Crises: Indonesia, Korea, Brazil (2003) · IMF 독립평가실(IEO)IMF 안의 독립 평가 기구가 낸 평가 보고서 본문입니다. 자본 거래 규제 때문에 한국 은행들의 부채 상당 부분이 외화로 된 단기 채무였다는 설명, 11월 초 현물·선물 외환시장 개입으로 원화를 받치고 한국은행이 국내 은행 해외 지점에 외화를 앞당겨 대 주었다는 설명, 점점 더 많은 외국 은행이 한국 금융회사에 대한 단기 대출을 연장하지 않았다는 설명, 공식 외환보유액에는 해외 지점에 대 준 유동성 낮은 돈이 들어 있었고 이를 뺀 가용 외환보유액은 약 70억 달러로 곧 만기가 오는 단기 빚에 비해 아주 적었다는 설명(인쇄 17~18쪽), 12월 24일 개혁 강화·지급 가속·민간 은행들의 단기 빚 연장이 함께 발표되었고 이날이 위기의 전환점이었으며 은행들이 연장 약속을 대체로 지키고 단기 채권을 1~3년 만기 국채로 바꿨다는 설명(인쇄 20쪽)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Korea — Letter of Intent (1997년 12월 3일) · 국제통화기금(IMF)한국 정부가 IMF에 낸 의향서 원문입니다. 지급불능이거나 약해진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경제를 더 개방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이를 신중한 통화·재정 정책으로 받치겠다는 약속(3항)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IMF 외환위기 극복 · 국가기록원정부 기록물 관리기관의 정책 기록입니다. 1997년 12월 3일 IMF와 580억 달러 지원 협정을 맺었다는 서술과, 2001년 8월 IMF 차관을 전액 조기 상환했다는 서술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
- A알기 쉬운 경제지표해설(2023년판) 16장 환율 · 한국은행중앙은행의 공식 해설서(첨부 PDF)입니다. 1997년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단기외채가 늘어 기초 여건이 약한 상황에서 외화가 빠르게 빠져나가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설명(391쪽)과, 19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했다는 설명(398쪽)을 가져왔습니다.본문으로